2019년 7월 24일 수요일

그해 여름은 무더웠네

<여름 이야기>(A Summer's Tale, 에릭 로메르, 1996)를 보고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는 터라 괜히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20여 년 전 영화이지만, 세련된, 소위 ‘힙한’ 영화였다. 알게 모르게 ‘쿨한’ 줄거리도, 배우들의 옷차림새도, 상쾌하고 몽환적인 영상미도 모든 게 완벽한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 ‘가스파르’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가가 꿈이다. 어찌 보면 수학과 음악은 별 차이가 없다. 작곡도 결국에는 음표를 수학적으로 ‘잘’ 배치시키는 일이니까. ‘가스파르’는 휴양지에서 세 명의 여자와 아슬아슬하게 썸과 연애 사이의 줄타기를 한다. 결국에는 셋 모두와 데이트 약속을 잡아버리고야 말고 혼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가스파르는 능력자일까, 윤리적 지탄(?)을 받아야 하는 악인(?)일까?

 로메르의 영화는 홍상수와 닮아 있다. 아니, 홍상수의 영화가 로메르와 닮아 있다고 해야하는게 맞다. 허나 홍상수와 로메르의 영화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과의 ‘거리’이다. 홍상수와 로메르의 남주인공들은 대체로 찌질하며,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족속들이다. 홍상수의 남주인공들은 실제로 만나면 진짜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밉게 느껴진다. 허나 로메르의 남주인공들은 똑같이 밉고 찌질하지만 싫어하고 싶지는 않은 인물들이다.


홍상수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의 주인공 '효섭'(김의성 분)은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이자 '루저'다.


 그래서 <여름 이야기>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가스파르에게 휘둘린 세 명의 여자도, 영화의 서사 상 명백한 주인공인 가스파르에게도. 작금의 로맨스 영화들은 이른바 ‘감정과잉’에 극도로 시달리고 있다.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에 대한 화두가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장하면 수지의 편과 이제훈의 편으로 갈려 남녀가 열심히 싸운다.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면서. 허나 <여름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면서 역설적이게도 자기 혼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버리는 주인공을 덤덤한 연출로 ‘제시’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의 여지를 길게 남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연애’가 과연 뭘까, 남녀 사이란 왜 이렇게 아슬아슬하고도 어려울까, 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에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영화란 마침표를 찍는 영화보다 물음표를 찍어주는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다.


여름은 너무도 무덥다. 그래서 우리는 가스파르를 매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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