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A Summer's Tale, 에릭 로메르, 1996)를 보고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는 터라 괜히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20여 년 전 영화이지만, 세련된, 소위 ‘힙한’ 영화였다. 알게 모르게 ‘쿨한’ 줄거리도, 배우들의 옷차림새도, 상쾌하고 몽환적인 영상미도 모든 게 완벽한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 ‘가스파르’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가가 꿈이다. 어찌 보면 수학과 음악은 별 차이가 없다. 작곡도 결국에는 음표를 수학적으로 ‘잘’ 배치시키는 일이니까. ‘가스파르’는 휴양지에서 세 명의 여자와 아슬아슬하게 썸과 연애 사이의 줄타기를 한다. 결국에는 셋 모두와 데이트 약속을 잡아버리고야 말고 혼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영화의 주인공 ‘가스파르’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가가 꿈이다. 어찌 보면 수학과 음악은 별 차이가 없다. 작곡도 결국에는 음표를 수학적으로 ‘잘’ 배치시키는 일이니까. ‘가스파르’는 휴양지에서 세 명의 여자와 아슬아슬하게 썸과 연애 사이의 줄타기를 한다. 결국에는 셋 모두와 데이트 약속을 잡아버리고야 말고 혼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가스파르는 능력자일까, 윤리적 지탄(?)을 받아야 하는 악인(?)일까?
홍상수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의 주인공 '효섭'(김의성 분)은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이자 '루저'다.
그래서 <여름 이야기>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가스파르에게 휘둘린 세 명의 여자도, 영화의 서사 상 명백한 주인공인 가스파르에게도. 작금의 로맨스 영화들은 이른바 ‘감정과잉’에 극도로 시달리고 있다.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에 대한 화두가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장하면 수지의 편과 이제훈의 편으로 갈려 남녀가 열심히 싸운다.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면서. 허나 <여름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면서 역설적이게도 자기 혼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버리는 주인공을 덤덤한 연출로 ‘제시’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의 여지를 길게 남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연애’가 과연 뭘까, 남녀 사이란 왜 이렇게 아슬아슬하고도 어려울까, 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에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영화란 마침표를 찍는 영화보다 물음표를 찍어주는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다.
여름은 너무도 무덥다. 그래서 우리는 가스파르를 매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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